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문단 편집) == 7차 당대회 == [[김일성]]은 1985년까지 사회주의 건설을 끝내고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1986년 7차 당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80년대 지나친 군사비용 증가, [[북한/경제/역사/1980년대의 대규모 정책 실패|연이은 경제정책의 실패]]로 외채 원금은 커녕 이자도 제대로 못갚는 국가였고 경제상황도 점점 악화되어 가고있었다. 그 상태에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당대회를 여는것은 불가능했고, 5차 당대회, 6차 당대회가 10년 주기로 열린것처럼 1990년에 열릴수도 있었다. 그러나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으로 북한 경제는 완전히 망가져 버려서 1990년 북한의 국민소득은 80년대 초반 수준으로 회귀해버리고 1991년쯤 되면 [[자강도]], [[량강도]] 지방에서는 아예 배급이 중단되는 지경에 이른다. 따라서 예측되었던 1990년과 김일성의 팔순이었던 1992년에 당연히 열리지 못했고 1994년 김일성 사후의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내세운 탓에 조선로동당 전원회의는 1993년 6기 21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열리지 못했고, 1995년에 [[고난의 행군]]까지 닥치며 북한 경제는 말 그대로 최빈국 중의 최빈국으로 폭삭 주저앉았다. 이후 유훈통치 기간을 지나 1997년~1998년에 기존의 주석제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는 폐지, 당 회의나 대회를 개최하는 당 정치제도는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국방위원회]]와 선군사상에 밀려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 그렇게 당 전원회의도 열리지 않고 [[조선로동당]]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면서 김정일 생전에는 당 대회는 꿈도 못 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